지난 12월 10일에 한 선배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이 분은 2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또한 모 당의 대변인으로 TV 에 자주 나왔던 적이 있어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얼굴이다. 결혼식 당일 또 다른 선배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일전 모임에서, 혼주가 "연말 모임은 저희 결혼식에 와서 부담없이 드시고 즐기며.. 피로연장을 송년회로 이용하십시오" 라고 했는데 아마 축의금은 받지 않는 모양이니.. 화환을 보내면 좋을지 어떨지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글쎄요, 아마 축의금을 받을겁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그 분은 공직자 재산신고시 신문지상에 발표된 재산액만도 상당함에 불구하고, 모임의 회비 납부에도 인색하며, 후배들에게도 별로 베푼적이 없는 분 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 분명 바로 전 모임에서.. 그냥 오셔서 편히 드시고 가라했는데..." 그 때 갑자기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이 혼주가 십수년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송파구의 어느 개인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 병실에서 열심히 읽고 있었던 책의 제목은 '상대를 설득하는 법' 이었다.
식장을 들어서기 전에 축의금 접수대에서 뜻밖에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은 모임의 후배인데 대전에 살고 있는 그에게 접수를 좀 도와 달라고 해서 두 시간 전부터 와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니 그럴 법도 하였다. 백여개도 넘을듯한 화환들이 식장 앞에 세워져 있고.. 접수 보는 사람 만 해도 대, 여섯은 넘는 것 같았다. 보통 신랑의 친구라든가, 가까운 친지들이 도와주던데..
주례는, 한 때 한 지역의 맹주로서 3김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인 오래된 정치인 이었다. 보통은 신랑이 학교 선생님이라든지 평소에 존경하는 분을 모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랑의 아버지인 혼주가 자기 결혼식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사회는 sbs의 인기 아나운서였는데.. 이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언사에 급급.. 남의 집 결혼식의 사회를 보러 온 것인지 아님 연예인의 하나인 자신을 선전하는 장소로 활용하는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관행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는 신랑의 친구가 보는 것이.. 다소 서툴고 어눌하더라도 그 것이 정겨운 혼례의 모습이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압권은 혼주의 인삿말이었다. "실은 이렇게 넒은 홀을 예약해놓고.. 과연 다 채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어젯밤 잠을 설쳤는데.. 이렇게 가득 채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정치쇼도 아니고.. 자식의 혼사에 참여한 머릿수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과연 인산인해의 그 하객들이 그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은 일념에서 몰려든 것일까 ?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어떤 품격의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느냐가 중요하다'는 옛 선인의 경구도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신랑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식의 결혼을 충심으로 반겨주는 진심보다, 우선 하객의 머릿 수가 그렇게도 신경이 쓰였단 말인가 ? 그런 것들로 기뻐하는 그 선배의 영혼이 안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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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은 연무재가 탄생한지 8년째 되는 날이었다. 무도의 도량에서 실력을 키우는게 중요하지 외부 사람들을 불러모아 마치 세를 과시하는듯한 모습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아 아무 기념행사도 갖지 아니하였다. 허나 연무재 도장에서, 자신의 수련기간도 되새기며.. 일년에 한 번 쯤은 각종 사정으로 못나오는 수련생들과 만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간소한 기념식을 시작한 것이 아마 수 년 전 부터가 아닌가 싶다. 매년 12월 두째주 화요일에 그 해에 한 번이라도 같이 수련한 분들에게만 연락하기로 하였다.
이주환 사범이 언제나 처럼 제일 먼저 도착하였다. 이 분은 수련이 끝나면 항상 마대자루를 가장 먼저 들고 도장 마루 바닥을 닦는다. 매 번 뒤풀이가 끝나면.. 세면실에서 음료수 컵을 닦고 있다가, 나와 작별인사를 나누곤한다. 참 선하다.
다음으로 혜린이가 왔다. 얼마만이던가 ? 대학 일학년때 부천에 있는 카톨릭대학에서.. 인터넷 보고 왔다며 도장에 들어서던 앳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가 휴학을 안했으면 벌써 4학년이라니...
변형근 사범.. 말 수는 적으나 항상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홈페이지의 동영상과 앨범정리는 항상 그의 몫이다. 밤새 근무하는 직장의 특수함에도.. 빠지지 않고 수련에 임하며 밤늦게 직장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볼 때면 그 회사 사장이 많이 밉기도 하다.
조정효사범.. 연무재가 초기에는 서울대학교 태권도부 권우회 출신들의 수련장내지는 사랑방으로 이용되었고.. 그 학교 출신들은 워낙 똑똑한지라 정들만 하면 무슨 이윤가 대고 눈앞의 출세(?)길로만 내빼었는데.. 오직 이 자만 아직도 중심을 잡고 서 있다. 화요일에만 나오고.. 과거의 잘못된 수련습관이 쉽게 고쳐지지않아 싫은 소리를 여러번 했더니 섭섭했던 모양인지.. 총무사범으로서 지난 일년의 소회를 말할 땐 나한테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마디 하면서도 여전히 신사 모습을 잃지 않는다.
홍기민 사범.. 몸이 날래고 운동신경도 뛰어난 면이 있어 기대를 하고 있는데.. 분당의 직장이 본인의 수련의지를 도와주지 않으니 걱정이다. 그래도 생업이 먼저이지 않겠는가..
김성두 군.. 자세가 참 많이 좋아졌다. 고민하던 허리가 많이 교정되었다. 본인이 흘린 땀 만큼이나 보람이 있지 않나 싶다.
천종민 선생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축하한다고.. 이 분은 부산 장안제일고 수학 선생님으로 연무재에 대한 열정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뜨겁게 느껴진다. 그 옛날 서울에서 야학 선생님하며 연무재 수련에 열심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12월 29일 연무재 송년회에 참석하러 올라온다 하니 그 날은 순대국이라도 한 그릇 사주어야겠다.
자꾸 문 쪽으로 눈이 간다. 기본 수련이 끝날 무렵 슬며시 나타나던 이승룡군이 감감무소식이다. 곧 200회 수련 기념일이 다가오는데..
또한 김기주 고문님께서도 오신다 하였는데... 얼마후에, 튀김닭 세마리를 들고 조성훈군이 도착하였다. 어른께서 갑자기 감기몸살에 걸려 미안한 마음에 조성훈군을 불러 닭을 보내셨다. 이 추운 날씨에 심부름으로 먼 길을 돌아온 조군도 참 애뜻하다. 직장을 옮긴후 연무재엔 발을 끊었는데.. 그래도 얼굴을 보게 되니 이래서 기념일 등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상미 양도 왔다. 곧 수련 50회가 되는데.. 일류직장의 간부인 만큼 일이 무척 많은 것 같다. 그 친구인 신상은 양도 오랫만에 들렸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대학원까지 나와 내가 가끔 '가방끈'이 길다 하여 '가방끈'이라고 놀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머릿 속에 든 것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롤라블레이드 타다 머리부터 떨어졌으니 ㅎㅎ(미안). 미국이란 다민족, 다종교국가가 초강대국인 이유를 가끔 생각해 본다.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모국의 문화를 가진 여러 민족들을 단순하고 투명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민주주의 원칙으로 초점을 모아 강력한 구심력으로 국민 모두의 힘을 장악할 수 있는 정치력이라고 본다. 연무재도.. 배운 사람, 덜 배운 사람, 가진 사람, 덜 가진 사람, 빠른 사람, 덜 빠른 사람, 큰 사람, 작은 사람, 남자, 여자등 모두가 마음을 열어 놓고 수련에 정진할 때, 서로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서로 영향을 주며.. 서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육체적인 몸짓의 발전과 더불어 영혼의 만족도 같이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소원(양명석)이 오랫만에 들렸다. 같이 수련하면 좋으련만.. 연무재 초기에 자주 만나던 때가 그립다.
정판영 군도 왔다. 연무재 초기 멤버들인데.. 다시 도장에서 몸을 부딪힐 기회가 있었으면.. 정명호 관장도 들렸다.
일년에 한 번 씩 연무재 기념일 마다 들리는 장원석 군도 왔다. 다른 아무 생각없이 같이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빨리 새 직장을 얻고 자신감을 회복했으면..
이재연 양도 왔다. 항상 당찬 모습이 대견스럽다. 연무재에서 열심히 땀 흘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박사과정을 준비한다나.. 참 바쁘게도 산다.
요즈음들어 자주 모습을 나타내는 김관섭 군도 왔다. 은행원 일도 격무인 것 같은데.. 부디 건강 관리를..
맹윤제 군도 왔다. 재주가 많은 친군데.. 조만간 다시 같이 수련할 수 있게 되길 빈다.
정명박 군도 왔다. 한참 무르익어 몸 쓰임새가 발전하는 시기에.. 직장을 옮기게 되어 안타깝더니.. 기다렸다가 나를 집에 까지 데려다 주는 모습이 정겹다.
제영호 군도 왔다. 치과의사란 전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직업이니.. 이 공부 땜에 그 동안 소원했었던 것 같다. 이 친구의 판소리를 시작으로 어느틈에 장기자랑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누구도 시키면 빼는 사람도 없다. 잘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전부 마음을 열어 놓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에손에 먹을 것들을 조금 씩 싸들고 왔다. 오랫만에 풍성한 연무재 잔치였다. 비록 사람 숫자는 적었지만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정말로 아름다운 모임이었다.
아직도 이들의 정감이 나를 흥분시킨다. 허나 그 기분좋은 쾌감이..한편으론.. 나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홍기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사실 모두들 따로 생업이 있음에도 이렇게 연무재가 꾸준하게 이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분 좋습니다.. ^^12/21
이승용오늘에야 글을 읽었습니다. 그 날 일이 일찍 끝날 줄 알고 주환이에게도 간다고 얘기해놨었는데...변명은 원장님께서 싫어하시니... 참석치 못한 저의 이름도 적어주시니 감사합니다. ^^;12/26
김성두
결혼식 얘기도 흥미롭고, 또 느끼는게 참 많네요. 저도 연무재에서 많은 것을 얻어가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한결같은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