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3) - 홍기민, 소준영, 김세진
기민이형이 지난주 부터 일요일에 거의 7시 30분 경에 미리 와서 몸을 풀고 운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건전한 생활의 부지런함과, 태권도에 대한 진지함이 만들어낸 변화로 짐작됩니다. 준영이도 8시에 일찍 왔습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도 8시 30분 다되어 늦게 도착했습니다. 간밤 사사롭고 무용한 업무로 수면시간이 적어, 오늘은 살살해야지 타협하다가, 몸이 풀어지니 늘상 그렇듯 살짝 오버페이스를 했습니다. 종일 갈증이 나서, 이것 저것 많이 먹고 마셨습니다. 운동 전 몇 시간 전 부터 미지근한 물을 (출렁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많이 먹어두고 운동을 해볼까 싶었습니다.
한 동작 끝나고 한마디 하고, 다음 동작 끝나고 한마디 하기를 반복하여 운동이 좀 늘어졌습니다. 준영이한테 제가 깨닫고, 알게된 것을 알려주려 하다 보니, 언제부터 운동을 입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할말이 있어도 시계를 보면서 해야겠습니다. 안그래도 일찍온 준영이는 운동 빨리 마치고 10시에 종교활동하러 가야하는데, 제가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아래에서는 언젠가 부터 한번 해드리고 싶었던 말을 써보고자 합니다.
음과 양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화면에서 써있는 글씨는 검은색이 만든 것일 수도, 아니면, 그 글씨들을 둘러싼 흰바탕이 만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가 존재하면, 다른 것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필연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것이 음양입니다.
그리고 검은 획들인지, 흰 바탕인지가 서로 어울려 글이 써지기 전에, 아직 아무것도 써지지도 표현되지도/드러나지도 않은 처음의 시점이 있습니다.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무엇인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만 남은 공간이지요. 가능성이기에, 거기에는 음양도 잠자고 있고, 다른 한편 아무것도 없다고도 볼 수 있으니 '무극'이라고도 합니다. 태극이라고도 하지요. 혼돈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공이라고도 합니다. 서로 다른 의미와 개념 같으나, 사실 서로 같습니다.
저는 어릴때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팔을 뻗어 지르며 '몸통지르기'를 하고, 얼굴을 막아 '얼굴막기'를 하고, 몸통을 막아 '몸통막기'를 하고, 아래로 내려막아 '아래막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4품을 받을 때까지 부지런히 했습니다. 대학에 오고, 연무재에서 운동을 배우며 어릴때 배우던 것과는 뭔가 다른 몸통지르기/얼굴막기/몸통막기를 했습니다. 참으로 뭔가 그럴듯 해보이는바, 뭔가 다른 동작들이 '진짜 태권도'라고 생각하고 많이 궁리하고 따라했습니다. 외부 사범들이 '이것이 무슨 태권도인가?' 라고 비판하는 말도 들어본 듯 합니다.
검은 글씨가 보이려면 바탕이 밝아야 합니다. 반대로 흰 글씨가 보이려면 바탕이 어두워야 합니다. 기술은 절대로 한 가지 동작과 스틸 컷만 덩그러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동작을 만들어지기 까지 의식적으로 취해야 하는 수많은 바탕 동작과, 내 자율신경이 그 사이 사이 빼곡하게 채워주는 수많은 동작들이 함께 들어차야 합니다. 예컨대, 전진하며 아래막기를 하기 위해서는 아래 막기 위해 힘껏 내려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선행동작과 여러 바탕 동작이 필요합니다. 기존에 늘상 부르던 '아래막기'를 '양'의 동작이라 하면, 이 동작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음'의 동작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연무재에서는 그 음의 동작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강조하기도 하구요. 제게 연무재는 음과 양으로 만들어져 뭉쳐있는 온전한 동작을 찾도록 도와준 곳입니다. 그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혼재하기 위해, 허리의 움직임과 무게중심의 이동이라는 본연의 움직임을 깨닫게 해준 곳이구요.
너무 '음'의 동작에만 집중하면, 다른 태권도인들이 알고 있는 태권도 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요즈음 품새선수들이 하듯 너무 '양'의 동작만 하면, '음'의 동작이 없는 껍데기 동작이 됩니다. 음과 양을 모두 품은 동작을 하되, 음을 강조할 수도 있고 반대로 양을 강조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컨대, 전진 앞굽이 아래막기를 하면서, 양을 강조하는 동작을 하면(즉, 손을 내려 막는 데 초점을 두면) 다른 태권도인들에게 좀 더 익숙하게 보일 것이고, 음의 동작을 강조하면(즉, 앞으로 손/발이 나가는데 초점을 두면) 상대적으로 낯설게 보일 것 입니다. (이것을 준영이한테 설명했는데,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한 동작에 이 둘이 모두 다 있는 것인데, 환경과 조건에 따라 기술이 달리 발현될 뿐입니다. 핵심은 허리의 꼬고/푸는 동작과 무게중심 이동, (하나 추가 하자면) 낮은 자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냥 가만히 숨쉬고 서있는 ...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이 내 몸에 체화되어 환경과 조건을 만나 여러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는, 그러나 걷고 밥먹고 일하는 평소의 내 모습입니다. 그래서 품새는 9장까지 있는 것입니다. 10장이 있다면, 망각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망각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준비 자세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을 사는 망각입니다. 그래서 무극, 혼돈, 공입니다.
태권도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위/아래의 세상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도입니다.
불혹을 넘어 태권도를 하는 지금의 일상이 참으로 즐겁게 행복합니다. 든든하게 이끌어주는 동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