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3)
우정, 천종민, 백민영
부산 장안제일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연무재(태권도동아리)와 수미사(수학동아리) 그리고 담임과 제자사이로 나름 애제자로 불렸던 백민영군이 금년 고려대에 진학한 후 처음으로 연무재수련에 동참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내심 반갑기도 하고 한 두번 수련하고 그만둘 것이라면 오히려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양재역 7번 출구 쪽에서 만나 함께 도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가이아이론(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 즉 스스로 조절되는 하나의 생명체로 소개한 이론, 제임스 러브록)이라는 책을 읽으며 오더군요. 본인도 듣기만 하고 내용은 모르고 있는데 그참 기특하기도 합니다.
고등학교때도 다양한 동아리활동과 선생님들 부탁까지 다 해내면서도 독서를 생활하던 습관이 고스란히 대학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독서에 대한 시간할애만큼 연무재 혹은 다른 운동에 대한 투자는 역시나 부족하더군요. 그래서 더욱 금일 수련이 촉매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도장에 도착한 시각이 19시 10분..지난 주와 다름없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불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장 문을 열고 형광등을 켜고 나서 탈의실을 문을 연 다음 도복을 갈아입고 도장 한 가운데 가부좌를 하고 앉아 유근법을 시작하는 습관적 행동이 반복됩니다.
본 수련을 앞두고 원장님께서 도장에 들어오셨습니다. 민영이를 보자마자 바로 성을 기억하시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학교는 어디를 다니는지..전공이 무엇인지를 세심하게 물었습니다.
수련시각이 다 되어가도 여전히 다른 동도들은 각자 바쁜 일로 최근 출석이 저조합니다. 도장에 도착하기 전 이승용 사범은 거래처 방문하는 일때문에 수련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몇 명 안되는 평소수련인원인지라 한 명만 빠져도 분위기가 가라앉곤 합니다.
원장님의 지도로 주춤서 몸통지르기를 한 후..원장님께서 오랫만에 제자랑 운동을 하게 되었으니 본인이 민영이를 직접지도하는 것이 좋겠다며..원장님께서는 오늘도 일찍 들어가보겠다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먼저 귀가하셨습니다.
오랫만에 본인과 민영이 둘만의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춤서 몸통지르기 와 앞굽이 아랫막기, 얼굴막기, 거들어막기 그리고 뒷굽이 양손날막기, 한손날막기를 집중적으로 함께 수련했습니다. 제대로 동작을 설명하려다보니 본인 스스로 궁금했던 점이 풀어지기도 하고, 오히려 의문이 가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연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련후 순대국밥집에서 민영이와 늦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하니, 본인의 대학생활이 떠올라 기숙사가는 길에 함께 방을 사용하는 선배들과 나눠먹으라며 순대도 포장해주었습니다.
일지를 쓰는 동안에 4번의 장례식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유난히 부고가 많다고 생각했는데..가만히 생각해보니 본인의 나이가 그런 연배가 되었습니다. 생노병사로 부터 그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일지를 마음놓고 쓸 수 있는 두세시간의 여유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을 차근차근 돌아봅니다.
연무재..누구나 삶의 시발점이 있고 전환점도 있습니다. 연무재를 스쳐간 동도라면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됩니다. 시간날 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고 있을 때 시간이 존재합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도복을 다시 챙겨 도장에서 수련합시다. 몸과 마음이 무겁고 주춤거려지더라도 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깁시다. 그것마저 힘들다면..글쎄요..저 역시 뭐라고 말해야 할지..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그저 지금 나 자신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래저래 생각만 많은 것 같습니다. 원장님의 따끔한 충고가 그리운 시간입니다. 정신바짝 차려야 합니다.